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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길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왔던 지름길. 이젠 그 지름길 벗어나 돌아가는 길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풀꽃들과 같이 노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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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9. 12. 00:36 찍고쓰다

채송화의 노래

- 풀꽃


푸른하늘이 그리웠어
태워버릴 것 같은 햇살도 그리웠어
마구 쓸어갈 듯 퍼붓는 장대비마저도 그리웠어
여름 내내 이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기만 해야했어
난 조그만 화분에 뿌리내리고
베란다 한 켠에 놓인 신세거든
반란을 꿈꾸었지
꽃 피우기를 거부 했어
내 안에 흐르는 피는 어쩌면 진홍의 겹꽃 인자를
가졌을지도 몰라
주는 물만 먹고 멀쑥하니 키만 키웠어
마치 넝쿨처럼 휘어져 꼬이며 자라는 거지
오십이 넘은 한 여편네가 오늘 그러더군

`넌 화분에 심겨져 베란다 안에 있다고....
나비나 벌이 오지 않을 거라고 아예 꽃마저 안 피우니`

그래 진실한 내 꿈은 이글거리는 태양 빛에
까맣게 익어갈 씨앗을 갖고 싶어
나비와 벌과 혹은 무당벌레와 짙고 은밀스런
사랑의 행위로...

자살을 꿈꾸기도 했지
베란다 끝으로 머리를 내밀고 뻗어 나가는 건
뛰어 내리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지

꽃도 못 피운 내 입술로 아-
햇살과 바람과 비를 향한
그리움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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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란다 한 켠에 자리한 채송화는 꽃 없는 삶을 살다 가려나봅니다.
‘넌 꽃도 못 피우고 갈거니?’ 하고 슬쩍 한마디 했더니 이렇듯 속내를 다 쏟아 놓습니다.

- myung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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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꽃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