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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길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왔던 지름길. 이젠 그 지름길 벗어나 돌아가는 길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풀꽃들과 같이 노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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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3. 22:32 다반사다

원도.

마치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곳이다.

젊은 날 몇 번의 놀이를 겸한 나들이에서 강원도는 그저 내가 살고 있는

부산하고는 너무 먼 곳이면서 ‘자연이 잘 보존 되어 아름다운 곳’

그렇게만 막연히 머리에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다 30대 중반,

7번 국도를 벗어나 강원도 내륙 깊은 곳으로 처음 찾아들었던 유월 한날.

삼척에서 오십천을 따라 태백으로 들었다 이어 고한으로 가는 길에

해발 1,280m 싸리재를 넘었다.

아침에 부산을 출발해 동해안 해안길을 고불고불 다 감아 돌며갔던 터라

싸리재를 넘을 즈음 해넘이가 끝나고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그때 장관이던 노을빛의 감동은 스무 해가 더 지난 지금도 어제일인 듯 생생히 느껴진다.

(당시 난 우리나라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도로 중 제일 높은 곳이 싸리재일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만항재가 1350m로 고도가 가장 높은 도로였고

다음이 싸리재였다.)

첩첩산중 너머로 지는 해를 배웅하고 어둠살이 펼쳐지고 나서야 구절양장의 길을 내려와

온통 거무스레하던 고한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정선으로 가는 길.

유월의 푸른바람이 정선으로 향하는 차창에 붙어 퍼드득였다.

큰 함성만 질러도 쏟아질 것 같은 경사도의 강원도 산은 가히 매혹적이었다.

아우라지, 소금강, 화암.... 깊숙이 난 길을 돌며 난 마음 하나를 정했다.

‘이 세상 소풍이 끝나면 이곳에서 쉬리라....’

그리고 그 이후,

삶에 지치거나 고독에서 뒤척일 때마다 내 영혼은 강원도 나들이를 했다.

강원도의 산천을 고요히 떠올리고 있으면 넉넉하고 평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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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강원도에 한 산악회에서 산행을 간다했다.

백두대간에 걸친 산들이 한 둘이랴마는 가보고 싶던 동강을 끼고 있는

‘동강 백운산 산행’이라는 말에 얼른 한자리 부탁을 했다.

산행일.

상기된 가슴은 심장박동수를 늘였고 그 가벼운 흥분에 취해 네 시간 넘도록 달리는 길도

지겹지 않았다.

(점재나루에서 동강 잠수교를 건너러 가는길)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가 동강 점재나루에 도착하니 11시 30분.

점재나루에서 잠수교를 지나 운치상회에서 왼쪽으로 산행들머리가 열려있다.

강과 나란히 잠시 순한 길을 걷다 오른쪽으로 산길이 꺾이면서 차오르기 시작한다.

병매기고개를 오르면서 두통과 어지럼증이 왔다. 병원서 검사를 받느라고 굶었다가

그 후 며칠을 소홀히 했더니 아마도 그 영향인 듯했다.

병매기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마친 산우들이 수리봉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갈등을 해야 했다. 당시 상태로는 무리였다.

함께한 아우에게 따라 오르라고 했더니 내 곁에서 쳐지고 만다.

420봉 전망대에서 동강이나 보고 날머리인 제장나루까지 찾아가기로 아우와

결정을 하고 동강 풍광과 동강의 S라인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백운산 지능선이 강으로 내려가 엎드렸다. 그 끝 푸른소가 `나리소`이다.)

그러는 사이 어지럼증도 두통도 사라졌고 산우들을 뒤따라 오르고 싶은 맘이

다시 일어났다. ‘뒤따라 오르자‘는 내말에 아우가 너무 쳐져버렸다며 그냥 되돌아 가자한다.

다들 정상을 지나 점심을 먹을 텐데 그 시간이면 우리가 붙을 수 있을 거라며

아우를 설득해 둘이서 수리봉능선을 올랐다.

바위능선을 바들거리며 네발로 타는데 왼쪽 아래는 급한 사면이고 오른쪽 아래는 까마득한 벼랑이다.

그 벼랑을 끼고 흐르는 시퍼런 동강물이 눈 아래다. 겁먹은 아우에게 그냥 ‘앞만 보라’는 주문을 계속해가며

620봉을 오르고 770봉을 지나 드디어백운산 정상에 닿았다.

(백운산 정상에서 증명사진 한 장~!)

앞서 간 친구에게 백운산정상이라고 휴대폰으로 알려놓고는 여유롭게 증명사진도 찍고 식사 중이라는

안부를 찾아 미처 끝나지 않은 밥자리에 앉아 두 어술 뜨고 함께 하산을 했다.

하산길은 칠목령(칠족령)능선이다.

능선을 따라 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은 단애 위 산길을 걷는다.

왼쪽은 수백 길 아득한 벼랑, 그 단애를 끼고 옥빛 동강물이 감돌고 흐른다.

벼랑 쪽에 제대로 된 안전장치는 없다. 단지 ‘추락위험’ 경고문만 곳곳에 있을 뿐.

등산로에서 몇 발만 벗어나면 말 그대로 추락이다.


(백운산 능선길에서 본 동강의 아름다운S라인)

여섯개의 봉우리를 떨어졌다 올랐다를 반복하며 거칠고 아찔아찔한 내리막길을

걷다보니 볼멘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위험해 잠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여성들이나 초보들에게는 무리가 되겠다고 했다.

540봉.

아찔한 수백 길 낭떠러지 위에 돌무지에 싸인 추모비가 서있다.

한 산악회의 여성 산우가 69년생 꽃다운 나이에...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로 사진을 찍다 추락했는데 어두워지고 구조를 위한 접근이

힘들어 그녀에게 담요를 던져주었고, 다음날 전문구조대가 와서 현장에 갔을 땐

안타깝게도 이미 숨져 있었다고 한다.)


(위험구간에 세워져 있던 `추락위험` 표지목. 표지목 뒤는 수백길 낭떠러지다.)

(단애 위의 산행길 -그려진 선이 걸었던 산행로다.)

니륜재를 지나 530봉 칠목령.

순한 길이 제장나루까지 이어졌다.

점재나루 잠수교를 지나 산행시작 시각이 11시 50분경이었는데

제장나루로 하산을 끝내니 16시 40분이다.

5시간, 적당한 시간을 걸었다.

(날머리 제장나루로 내려오는 길을 걷다 돌아 본 백운산)

힘들어 두 번은 오지 못할 곳이라며 내려 온 산인데

동강을 건너 백운산의 능선을 마주하고 바라보니 그새 간사한 마음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오리라’한다.

백운산 길에서 내려다보는 구불구불한 동강의 물길에 반해 다시 오리라.

백운산을 다녀오고 나서 꿈결에 동강 나들이를 했다.

가을 백운산이 아름답다고 한다. 단풍 든 나뭇잎 사이로 얼핏얼핏 푸른 동강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을 떠올리면 절벽 가까이 섰을 때의 짜릿함 같은 전율이 온 몸을 돈다.

올 가을 즈음에 다시 백운산을 오르는 행운이 오도록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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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꽃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