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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길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왔던 지름길. 이젠 그 지름길 벗어나 돌아가는 길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풀꽃들과 같이 노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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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0. 24. 21:29 다반사다


어무이는 아버지 생전에 진드기처럼 붙어 있던 그 일가붙이 어느 누구한테도,

심지어 아버지 생전에 만들어 놓으신 ‘六家장학회’(사헌부 통정대부(司憲府通政大夫)

관계(官階)를 받으신 조상님의 슬하에 여섯 형제가 있어 그 후손들을 ‘六家’라고 했다)에도

손 벌리는 일을 원치 않으셨다.

그리고 새벽 별 보고 나가셔서 달빛을 등에 지고 오시는 고달픈 삶이셨지만 어무이는

‘내 팔자가 왜 이러냐’는 헛 탄식도 한 번 않으셨다.


‘내 새끼들’에 대한 집념은 어리광을 받아 주거나, 눈물을 훔쳐 주거나 하는

사소로운 것과는 멀었지만 집착에 가까울 만큼 어무이의 능력 안에서는 최대한의 것을

우리에게 기울이셨다.

태생부터 약하게 태어나 늘 약골이던 나는 자라면서도 늘 어무이 한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연주나력 (임파선 결핵)으로 비롯해 늑막염을 몇 차례씩 앓아

중학교 때 이미 종합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불효를 거듭했지만 어무이는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고,

둘째인 외아들이 중학교 여름방학의 탈출사건 때도 눈물 한 번 없으셨다.

게다가 늦게 둔 막내 딸을 초등학교 2 학년때 소아성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두 달씩이나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도 “내 팔자가 왜이러냐... 아버지도 안 계신데 너거는 이리 아파사코...

너거 아버지는 와 이리 일찍 가서 이 짐을 다 내한테다 지워두었노....”

이런 푸념이나 한탄 정도는 하실 수도 있으련만 정말 한 번도 그런 말씀은 없으셨다.

어린 자식의 철없는 행동 앞에서 곧잘 하시던 어무이 말씀 “요새 반상(班常)이 없어진

세상이긴 하나 누가 없어졌노? 너거는 그래도 양반의 자식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제?”

어무이의 앞에 다가서는 액(厄)은 액이 아니었다. 새로운 경험이고 또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시고 계신 것 같았다.
어무이 억척스런 희생 속에 우리 삼남매는 참 평범한 아이들로 성장 헸고, 이젠 다들 성인이

되어 제 앞가림 제가하고 살 만큼씩 되었다.

자식인 내가 이 나이 되어 가끔씩 어무이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어무이 삶이

참 처연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돌곤 한다.
철없는 자식들과의 삶에서 어딘가 위로 받고 싶고 하소연하고 싶고 하실때가 없으셨을까....

요즘 아침에 TV에서 아침마당이란 프로그램 ‘그 사람이 보고싶다’를 보면 우리 어무이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그때 우리 어무이가 혹여 라도... 그러셨더라면 지금 화면 속에 서서

울고 있는 여자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myung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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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꽃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