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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길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왔던 지름길. 이젠 그 지름길 벗어나 돌아가는 길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풀꽃들과 같이 노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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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20. 00:47 다반사다

덕도 외양포.

오래 전 어떤 이의 기행문에서 가덕도 외양포풍경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사진 속의 풍경에 마음이 빠져 할 수만 있으면 빠른 시일에

한 번 찾으리라 했지만, 산행을 하느라 찾고,

진해 용원에 해산물 장보러 가는 길에도 찾고,

그냥 나들이길에도곧잘 가덕도를 들르면서 정작 외양포는생각에서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하고있었던 일이 깊은 가을 한 날 드디어 이루어 졌다.

골리앗 크레인이 도열해 있는 신항만의 위용을 보면서 들어선 가덕도는

거가대교 건설과 연결도로 공사로 인해 메우고 깎이고 잘려나가

온통 벌겋게 상처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선창에서 율리, 천성을 거쳐 대항.

대항에서외양포로 넘어가는 길의 경사도가상상을 초월한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 같은 스릴을 느끼면서

산으로 난 시멘트 포장 좁은 길을 올랐다.

차로 움직였지만 올랐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은 길이었다.

비켜설 곳이 없는 길, 혹시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나면 어쩌나 조바심으로 불안했지만

다행히 외양포 마을을 들어설 때까지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외양포 마을의 풍경.

정지 된 시간 속의 풍경이다.

일본강제점령기 일본군 막사로 쓰던 주택들로 이루어진 마을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촌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길 일방통행을 안내하는 어르신에게 일본군의 포진지의 위치를 물었더니

마을중앙에 난 길을 따라 산 쪽으로 가다보면 나온다고 일러준다.

일본군의 포대진지를 찾아가는 길에 있는 가옥.

일본의 패망으로 외양포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이 돌아가고 난 후, 대항에 살던 어민일부가 이곳으로

옮겨와일본군 막사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한다.

당시엔대항 어촌마을의 집들에 비해 살기가 좋아 서로 이곳으로 오려했다 한다.



울도 담도 없는 집.

외양포는 군사지역과 국유지라 증개축이 불가능해 이렇게 100여 년 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이 주둔하면서판 우물.

화강암으로 쌓아 올려 만든 우물 중 아래 사진의 우물은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우물이다.

외양포에 이런 우물이 여덟개가 있다고 한다.

마을 끝 산언덕에위치한 포대진지 입구에 세워 둔 표지석.

한 면에는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란 글이, 다른 한 면에는 소화11년6월건지(昭和十一年六月建之)

라고 새겨져 있다.

소화 11년이면 1936년이 된다.(해방까지는10여 년이 남은...)








일본군의 포대진지 모습.

외양포의 포대진지는명치 37년(1904) 8월에 착공하여 12월에 준공한 것이라고 한다.

러일전쟁 승전 후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진지 벽의 두께가 1m 정도로 상대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게 되어 있고,진지 위에는 대나무 숲을조성해

항공기로도 진지를 식별하기 어렵도록 위장을 해 두었다.

마을 안의 수로와 막사 그리고 우물 일본군의 포대진지등을우리나라 조선사람들의 노동력을이용해 만들고

지은 것이라 생각하니 나라 뺏긴 민족의 설움과 아픔이 한 세기를 넘어서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외양포에서 새바지 등대로 넘어가는 길엔 화장터도 있었다 한다.

일방통행 안내를 하는어르신 "많이 맞았지. 마구 팼어. 이래도 패고 저래도 패고..."

짐승 같이 부리다가 쓰러져 죽으면 그 주검 마저도 아무렇게나 대했다니 일본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일본색이 그대로 있는 외양포 마을과 일본군의 포대진지와 그 잔재 앞에서 한세기가 가도록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행여 찬사마라.

치욕의 역사를 목숨과 바꾸며 처절하게 살다간 우리 조선사람의넋이 시간 멈춘 이 공간에

함께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외양포를 찾아들 땐 다른 어촌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신기하고 색달라 보여서다.

그러나 막상 마을과 일본군의 포대진지, 마을 형성 목적,도구로 쓰였던조선사람의 수난사를

떠올리며가슴에 울분을 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되돌아 나왔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명명하고 자국의 것이라 주장하는,

아직도 멈추지 않은 일본의 침략행위에 우리는무엇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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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꽃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