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은사님을 뵈러 가는 길
선생님을 뵌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흔 해도 더 된 세월을 거슬러 초등학교 계집아이가되어 찾아뵌 선생님.
부산 근교의 작은 도시 외곽 산 속,흙과 나무로 손수 지으신 집에서
완연한 촌부의 모습으로 계셨다.
첫 발령을 받아 우리학교로 오셔서 4년을 계셨던가...
그때 미혼이셨던 선생님의모습을 아슴히 떠올리며 엎드려 절을 드리고 손을 잡으니
나무토막 같으시다. 뭉그러진 손톱, 거친 손...
선생님은 멋쩍으신 듯풀꽃이 제맘대로나 있는 마당 한 켠을가리키시며
"저 장작 다 내가 안팼나...촌에서 이거저거 다 하다 보이 손이 이렇지..."
그냥 눈물이 흘렀다.
유년의 그 아련함 으로 인해서인지 연로하신 선생님의 모습으로 인해서인지 모를 눈물이...
어쩌면아버지 사랑으로 늘 허기진 내가 모든 걸 빌어 울었는지도 모른다.
"사모님은 어디 계시는지요?"
"몸이 아프다. 혈류장애라고...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청년의 몸으로 개구쟁이들을 운동장으로 몰아 함께 공차기를 하시던 선생님의 옛모습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으셨다.
"선생님~! 우리학교에서 다음어디로발령을 받으셨습니꺼?"
"자갈치 시장을 끼고 있는 C 국민학교였지. 그런데 옮기고 두 달 만에 그만 두고 말았다..."
"네? 아니...왜 그러셨습니꺼.."
" 음... 새로 부임을 했는데 신학기 아이가... 학교측에서봉투를 주면서 자갈치 시장서
장사하고 있는 학부형들을 찾아다니라고 했지. (소위 촌지를 받으러 다니라고 한 것 같았다.)
두 달을 그냥 근처를 돌기만 했다."
말씀을 아끼고 계셨지만 `차마 그짓은 못하겠더라...` 고 눈빛이 말을 하고 계셨다.
"고마 그 봉투에 사직서 써서 내고 말았다. 그리고는이리 촌으로 안들어 왔나..."
`교육자의 길을 걷겠다.` 하고 사범학교를 나오신선생님은비리와 부정으로 물든 그 바닥에서
젊은 날의 열정은 무참히 꺾여버렸고 가슴은 멍들어 교단에서 물러나신 거였다.
그리고는 산으로 들어오셔서 흙집 짓고 나무도 심고 풀꽃도 심고....그 아픔들 삭이시며
당신도 자연처럼 그렇게 살아오신 거였다.
"얼마 전에는 자네들 한 해 후배들이 한 떼가 와서 놀다 안갔나.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먹고...악기도 들고와서 놀다가 갔다."
불쑥 "선생님~~! " 하고 찾아드는 제자들을 위해 바베큐를 해먹을 수 있도록
드럼통도 잘라 놓았다 하신다.
"조금 더 있다 와 봐라...온천지 꽃이다... 그때 또 온나..집 뒤에 꽃터널이 생긴다."
마당에는 키가 10m도 더 됨직한 목련이 하얗게 꽃망울을 연방 터트리고 있었고
홍매화는 가지마다자잘한 꽃등을 달았고 붉은 명자꽃도입술을 벌리기 시작했다.
어사화는 꽃망울이 땡글땡글 터질 것 같았다.
이르게 핀 들꽃, 풀꽃들로 마당은 주단을 깔고 있었고....
불과 몇 년의 교직생활이셨지만,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는 제자들이 많다는 건...
제자들이 선생님을 뵈러 자주 들른다는건... 훌륭하신 인품의 선생님을 존경하기 떄문이리라.
점심을 들러 나간 길.
양산 천성산 꼭대기 가까이에 얹힌 듯 자리잡은 절 집, 미타암을 오르는 초입에
'잎새바람' 이라는 음식점.
채소로만 만들어진 음식을 들고 이런저런 옛 이야기로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너무 늦게 찾아 뵌 선생님께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훌륭하신선생님의 제자였음이 자랑스럽고 얼마나 가슴 뿌듯하였는지....
[선생님~!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울산에서 사는 친구도 선생님을 뵈러 왔다.
제네시스...멋진 차를 타고...
마당에서 "야~ 하얀 민들레다."했더니 선생님께서
"흰 민들레가 그리안 흔하제? " 하신다.
아슴한 기억과 또렷하게 살아있는 추억...
무채색에서 점점 색이 살아나고 있었다.
잎새바람.
윤동주위 `서시`의 싯귀가 입안을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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