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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길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왔던 지름길. 이젠 그 지름길 벗어나 돌아가는 길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풀꽃들과 같이 노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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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0. 18. 02:13 다반사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어무이로부터 참으로 모진 매를 맞은 적이 있다.

어무이는 비단실로 참수(전통자수)를 놓기도 하시고 불란서수 라고해서

천에 십자수 놓기도 즐기셨는데,

-그때는 여느 집에도 거의 흰 옥양목에 모란을 수놓은 횃대보가 방 한쪽 벽에 쳐져 있었다.-
삼단으로 된 사각 칠기나무 상자가 어머니의 반짇고리였다.

그 반짇고리 안에는 중국서 왔다는 몇 타래의 윤이 나는 색색의 비단실과

여러색을 땋아 엮어 논 실타래들이 골무랑 바늘쌈지랑 같이 상자마다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반짇고리 안의 수실들이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당연히 수실들의 행방에 대한 물음은 큰 여식인 나에게 떨어졌고

사실 난 전혀 그 수실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잘 모르겠습니더”로 답할 수밖에.....

어무이는 아예 나를 ‘수실 실종사건’의 진범으로 몰아가셨고 그저 속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은 나는 “아입니더... 진짜 모릅니더...”로 일관했다.
어무이는 “니가 거짓말을 하다이~ 바른대로 말해라. 우쨌느냐”

어머니의 오른손에 쥐어진 대나무살 회초리가 휘잉휘잉 바람을 가르며 내 종아리에 날아들었지만

내 입에서는 “모릅니더... 모릅니더...” 그 소리뿐이었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한다고 대노하셨고
- 사실 주위에서 ‘저 애는 저거 엄마가 화약을 지고

불에 들어가라 해도 “네” 할 아이다’ 그런 소릴 들을 만큼 난 요샛말로 예스맨이었다 -

“모릅니더”로 버티는 동안 내 종아리는 댓살 회초리가 지나간 자국이 터져 피가 흘렀다.

- myung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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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꽃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