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강원도에선눈폭탄을 맞아 어려움에 처했는데 철없는 사람은눈을 찾아 경북 쪽으로 나들이를 했다.
아침신문에 실린 `눈 내린 경주 양동마을` 사진을 보고는 일찌감치 경주를 향해 내달았으니...
계획은 `울주 언양에서 경주 산내로 넘어가는 산길을 타고 건천으로 양동으로 마지막엔 경주 남산길 조금 걷자.` 하고 ...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 일단 나섰는데 핸들이 생각하고 다르게 움직인다.
남양산에서 부산 -대구 민자고속을 타고 밀양IC - 언양 - 921번 지방도 - 경주 산내 - 건천 - 양동마을.굳이 에돌면서 921번 지방도를 선택한 건눈 덮힌 산과 깨끗한 능선의선명하고 시원한 모습이 보고 싶어서다.
★ 언양에서 경주 산내로 가는 길, 눈부신 세상이 펼쳐져 있다
★ 강학당 길
눈이 시리도록 하얀길을 달려 건천을 거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경주 양동마을 도착. 커다란 카메라를 잡은 진사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나도 똑딱이를 들고`강학당` 길로 오르려 했더니미끄러워엄두도 못내고 그냥 눈 풍경속의마을 길만 조금 걸었다.
★ 양동마을 풍경
양동마을/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 네이버 발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해운대 달맞이길초입 오르막에 있었던 `관가정` (얼마 전 까진 킹덤 호텔이다가 지금은 일루아 호텔의 예전 이름)을한옥을 닮은 모양의 건물이라 이름을 그렇게 했나 보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관가정`이 양동마을의`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 이름에서 가져다 쓴 것이란 걸 몇 해 전 `양동마을`을 찾고 나서야 알았으니...
양동마을에 잠시 머물렀다가 남산으로 가리라 했건만 또 달라진 길이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을 배향하고 있는 `옥산서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선조 임금이 사액한 서원이라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도 제외되었다.
(사액서원/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扁額)·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
서원의 [玉山書院]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세도를 누리고 있을 때의 필체라 글체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있는 추사의 글씨다.
추사의 글씨 외에도 한석봉, 퇴계 이황, 기대성, 이산해,(토정 이지함의 조카)등 조선 중, 후기
내로라 하는 문인 학자들의 글씨가 편액과 비석의 글씨로 남아 있어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옥산서원]편액 아래 깊숙히 보이는 [求仁堂]이 한석봉의 글씨다.
(사진이 어두워 컴에 따라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 옥산서원의 정경
옥산서원에서 나와 회재 이언적이 벼슬에서 물러나 지냈다는 `독락당`을 찾았다.
★ 독락당(獨樂堂).
`홀로 즐겁게 지내는 집` 어찌보면 이기적이기도 한 이름을 가진거처 같다.
하지만, 그 깊은 경지를얄팍한 발림 지식으로 어찌 해석하려 할 수 있겠는가...
수백리를 흐른다는 옥천을 끼고 자리한 `독락당`은 보물 제413호로 지정 되어있다.
수박 겉핥기로 `독락당`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회재가 이름 지었다는 `자옥산` 산행 들머리도 챙겨보고 오천의 `오어사`로 이동이다.
★ 오어사
언제 만들었는지 재작년에 없었던 현수교가 꽁꽁 얼어붙은 오어지를 가로질러 놓여있다.
오어사 옆 오르막을 차고 오르면 자장암을 거쳐 운제산 등산로가 열려 있다.
육산에다 500고지가 채 안되고 원점회귀가 가능한 산이라 `우리 친구들과 언젠가는...`하는 산이다.
★ 새로 생긴 현수교에서 기념으로 한 샷~
바닷가의 시장은 활기가 넘쳐 좋아하는 편이라 구룡포 시장통까지 찾아 갔더니 폭설로 인해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동해안을 따라 울산을 거쳐 집까지...
경주 남산을 가겠다고 스패츠며 아이젠을 다 챙겨 갔는데 계획 밖의 나들이로 하루를 참 길게 쓴 날이었다.
- 찬찬히 둘러봐야 할 곳을 가벼이 지나치 듯 보고 와 조금은 찜찜하다.
옥산서원 가까이 국보 제40호 정혜사지의 십삼층석탑도 보지 않고 왔으니...
다음에 정보를 가지고 다시 찾아 돌아보고싶은 곳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