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다

1003 호 할머니

풀꽃길 2004. 10. 27. 01:54

"띠리리리~잉......"

- 음.... 녀석 `잠깐만~`하더니 이제 끝내고 다시 전화구나. 장난스럽게 소리를 내야지.

"여어보오세에요오~ 요요요오~"

굵직하니 목소리를 깔고는장난스레 음을 붙여 `요요~`를 하는데

"에미야... 내 알겠나?"

"여보세요..."

"에미야... 모르겠나? 내다..."

나더러 '에미야 내 알겠나' 라고 하는데 당최 누군지 감이 잡히잖아 머뭇거리고 있자니

"에미야... 1003호 할미다..."

"아유...모친 죄송합니다... 빨리 못알아 뵈어서요."

"내 부탁 하나 들어주라"

"네... 말씀하세요."

"내가 수제비가 먹고 싶은데... 그걸 어디 팔아야 시켜라도 먹을텐데... 사먹지도 못하고..."

"그러세요... 제가 끓여다 드릴께요.모친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이구... 끓여 줄려고?.... 난 수제비 낱이 크면 안 먹어"

"네... 얄팍하니 작게 떼어서 끓일께요. 감자가 없는데 호박 넣어도 괜찮을까요?"

1003호 할머니.
20여일 전에 심장수술을 하고 집에 오신지 이틀 째다.
자식이라곤 출가한 딸 하나인데 멀리 있으니 어머니가 편찮으셔도 오가는 게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군 장교였던 영감님이 딸 하나 낳고 아들 못 둔다고 딴 여자를 데려와 한집 살림하면서,

속 다 썩히고 결국은 딸 데리고 나와 삼십 년을 혼자 사셨단다.

어제 집으로 찾아가 뵈었더니 아무도 수발들 사람이 없어 일흔의 연세에 수술 받은 그 몸으로

손수 죽을 끓여 드신다고 하셨다.

"모친 손이 필요하시면 인터폰으로 연결을 하셔서 부르세요. 아니...인터폰 하시려면 일어나셔야겠네...

그럼 제 전화번호 적어 드릴께요. 시키실 일 있으면 부르세요"

수제비가 드시고 싶어 적어 둔 번호를 찾아 전화를 하셨던 거다.

멸치다싯물을 내어다 수제비를 떼어 갖다 드렸더니 좋아하신다.

"에미야... 고맙다... 고맙다..."

같은 연배의 어르신들이 며느리에게 `에미야`하고 부르는 게 부러우셨던걸까...

아니면 `에미야` 하고 부를 자식이 없어 어중간한 아낙 아무에게나 `에미야` 라고 하시는 걸까...

(나더러 `에미야`라고 부르시는 걸 보니...)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조미료를 쓰시면 조금 넣어 드세요.조미료를 안 써서요..."

"죽도 넌덜머리가 나고... 수제비가 어찌나 생각이 나던지..."

나도 그랬다. 크게 몇 번 아팠을 때...
중2 때 처음 입원을 했을 때 속이 하얀 생무가 그리 먹고 싶었다. 옆에서들 해로워서 안된다고

했지만 내 눈 앞에는 청무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곤 했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나이로 폐절제 수술을 받았을 때...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지고

나서 제일 먹고 싶은게 `완당`이었다.
간호를 하던 여동생이 남비 하나를 사서 남포동`18번 완당집`에서 완당을 사와 먹었을 때 그 맛...

(푹 퍼져버려 엉망이었지만) 지금도 완당을 먹으러 가끔씩 들리지만 그날의 완당 맛에 비할 수가 없다.

동병상련이라고 얼마나 드시고 싶었으면 전화까지 하셨으랴 싶은 맘에 후다닥해서 갖다

드리고 나니 수고보다 고마움의 인사가 더 돌아온다.

나오면서 드린 인사...

"모친... 또 시킬일 있으시면 전화하세요"


- myung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