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다

심야 드라이브

풀꽃길 2005. 2. 3. 02:08


“랠리(Rally) 분위기 느껴보실랍니꺼?”

녀석은 은근히 스릴을 즐기는 나의 욕구를 충동질했다.


“야~ 여기 랠리 기분 낼 때가 어딨냐. 그리구 니 오토잖아”


“어딜 가든 랠리 기분 느끼게 해 드릴께요. 가실랍니꺼? 말랍니꺼?”


녀석은 이미 반 마음이 넘어선 내 욕구에 슬며시 협박 아닌 협박이다.


“좋아~ 가~!”


녀석은 나를 태우고 밀양의 한 산골짝으로 들어선다.

- 밀양... 감물리 ..


“이 곳엔 안 와 보셨지예? 설마 여기까지 오셨을라구....”

- 야!~ 여기 두 번씩이나 왔었어...

하지만 그 말을 목넘어로 꿀꺽 삼키고 능청스레 난 녀석에게


“응~ 그래... 첨이야~!”


사실 밀양 솔밭 앞 밀산 다리 건너기 전, 논 사이로 난 길 따라 흰 소나무가 있어 ‘백송’이라고 불리는 곳을 가본 적이 있었다. 껍질이 흰 소나무를 신기해 하기보다 백송의 길에 반해서 “어쩌면... 어쩌면...” 감탄사를 연발한 날, 밀양강과 단장천을 건너 여길 왔었다. 그리고 여름 한 날 또 다시 이곳을 찾아 든 적이 있었다.


“여기 친구 하구 왔었는데 산 속에 새로 길 내고 있더라고예. 아직 포장은 안했고.... 굵은 자갈길이대예. 거기다 커브가 엄청 심해예”


“그래? 어디루 넘어가는 길인데?”


“잘 모릅니더. 벨트나 잘 매이소”


깜깜한 그믐밤의 길을 차량의 불빛으로 밝히며 달렸다.


- 음... 여기 폐교된 ‘감물초등학교’ 앞이구나... 조금 더 올라가면 제법 큰 저수지가 나올 테지.... 그 저수지 못미처커다란 바위에 뿌리내려 홀로 선 소나무도 알아... 신기해서 몇 장의 사진으로 잡아 두었는데 아직 그 사진이 있어.. 그리구 그 바위 밑에 작은 굴이 있다는 것두 알아. 호기심 많은 내가 그 굴속을 탐험하려다 그만 뒀다는 거 아냐. 왜냐구? 그 굴 앞을 옻나무가 터억하니 막고 있더라. 그래서 그만 뒀지. 내 알러지 있는 거 너 알잖아 -


혼자 속으로 주절거리면서 녀석의 운전 솜씨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니

- 으잉? 이건 진짜... 첨 가는 길이네 -


산을 가파르게 깎아 지그재그로 길을 내고 있었다. 바퀴아래에선 자갈 밀리는 소리가 ‘짜르르륵.. 짜르르륵..’

겨우 차 한대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산길 옆은 족히 수 십 미터는 될 절벽이란 걸 어둠 속에서도 알 것 같았다.


Z 커브를 녀석은 단 한 번 멈춤도 없이 올랐다. 후륜구동인 녀석의 차 뒷부분이 자갈에 밀려 엉덩이춤을 추었다.

뒷 창 아래 공간에 올려 둔 모과가 바구니 밖으로 탈출해 이쪽저쪽으로 구르고 있었다. 아마도 녀석 차 뒷바퀴는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 끝에서 갔다왔다 하고 있을 것이다.


“랠리 기분 느껴집니꺼?”

“요란한 차 엉덩이춤이 랠리냐?”


“에이~ 참... 이왕이면 그렇다고 좀 해주시지... 낮이라면 달랐을 낀데 어두워서 스릴감이 떨어져 그럴끼라예”


“알았어~ 그럼 언제 낮에 다시 한 번 와~!”


여기 고지가 얼마나 될까? 근데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이지?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 보니 앞을 붉은 절개지가 가로막는다.


“여기가 끝입니더. 차 돌려서 내려가야 됩니더”


차를 돌린다더라도 전후진을 몇 번은 해야 할 것 같은 길폭이라


“야~ 내가 내려서 봐 줄까?”

했더니 하하~ 웃으며 걱정 없으니 관두란다. 차를 돌려 쏟아지는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다시 저수지 쪽으로 차를 돌려서는 저수지 옆으로 난 길을 보며


“이 길 따라 가면 어디로 가는고... 나선 김에 가보까예?”


“그래 길은 길로 연하여 끝이 없다 했으니 가보자....”


- 야... 이길 험해... 그리구 이길 따라가면 삼랑진 양수발전소 아랫댐이 나와. -


하지만 결코 그 말을할 수 없었다.

차체 아래에 투박스런 부딪힘을 들으면서 한참을 꼬불거리며 돌아오니 멀리 나트륨 등이 주황의 빛을 보였다.


“아~ 여기가... 삼랑진 양수발전소네예....”


“그래? 야~ 진짜네.... 저기 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 봐라~ 야~ 오늘 멋진 드라이브했네... 랠리도 즐기구....”


자정께 출발한 랠리 드라이브는 새벽 세시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끝났다. 속도 즐기를 좋아해 남해안고속도로 중 곧은길이 조금 계속 되는 함안길을 ‘함안의 아우토반’이라 부르며 단속 카메라 설치 전엔 200km 가까운 속도로 달리길 좋아하던 녀석.....


그 녀석이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꺼?” 하고 오늘 음성을 남겨 두었다. 전화해서 “좋은사람 아직 없니?” 했더니 “한 사람 소개 시켜 주이소” 한다.


"야!~ 올해는 좋은 사람 만나서 “제 결혼 합니더~!” 하구 메세지나 넣어~ "

*** 스무살의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아인 사슴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한창의 나이에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은 아이...좌절로 죽고 싶어 동맥을

자른 사건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타인의 만남을 외면하던 아이.

"침대 위가 네가 지낼 자리가 아냐...밖으로 나가자. 네가 다치기 전의 세상

그 속으로 다시 가자. 자 업혀...나가보자..."

한 시간이나 실랑이 끝에 다행스럽게도 첫만남에 녀석을 내 등에 업을 수

있었고 차에 태울 수 있었다.

핸드 콘트롤이 달린 척수장애우의 차를 신기한 듯 보며 운전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곧바로 한 척수장애우의 차량을 지원 받아미개통 된

새도로에 스프레이로 T, Z, S코스를 그리고는운전연수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면허시험장엔 장애우들이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차가

없었다. 길바닥에서 라면을 끓여 먹어가며 2 주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에 연습... 그리고 면허시험장에서 `합격`을 판정 받던 날 우린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서로 보았다. 녀석이 새차를가지게 된 그 날 내게로 왔다.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의 마음을 다 알기에 그 녀석의 첫 드라이브 동승자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음을...

그 후 15 년 여의 세월이 흘렀고 소년같던 그 아인 이제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몇 차례차가 바뀌고시간은 흘렀어도그 아인 나에겐 여전히

처음 만나던 날의 소년같은 모습이다. 녀석과 난 가끔씩 이렇게 드라이브

데이트(?)를 아직 즐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