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 이름하고..
하이텔이 영 사라진다 한다.
아직은 VT로 접속이 가능해 아주 가끔들어가 보기도 하는데
완전히 흔적을 감추고 나면앞으로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만 남게 될 것 같다.
파란색의 그리움...
내가 컴을 접했던 건 DOS 시절이었다.
2D디스켓(5.25 인치), 부팅 디스켓으로 부팅을 시켰던 그때.
요즘은 대다수가 2D 디스켓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싶다.
더구나 부팅 디스켓은 더더욱...
그때가 지나 486 컴퓨터를 가지게 되면서PC 통신을 시작했다.
하이텔 - 01410
천리안 - 01420
하이텔은 접속이용료가 9,900 원이었고, 천리안은 10 시간 이용에 10,000 원 정도
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2,400 bps 모뎀에`이야기`란 프로그램으로하이텔과 천리안두 통신사 모두를...
하이텔 아이디가 dadaiz 였고 천리안 아이디가 mulangai 였는데
dadaiz의 한글아이디로 `초록다다` 였고 mulangai 는 `물안개` 그대로 였다.
천리안은정액제에 묶여 하이텔 만큼오래 접속해 있지는 못했다고 기억 된다.
접속이용료를 제외 하고도 전화비만 매 달 십 몇 만원씩을 납부해야 했던 시절,
혹여 전화라도 들어오면 짤려버리던 통신 땜에 아예 통신전용전화선을설치했던...
2,400...4,800...9,600... 모뎀의 속도가 9,600bps 정도의 빠르기가 되면서
pc 통신의 인구가 많이 증가 했었던 것 같다.
한국통신에서는 그 즈음에 9,600bps의 속도를 가진 통신전용단말기를
무료로 보급했었고...
56,000 bps 모뎀이 나왔을 때 속도가 환상이라고 자랑했던 기억도 지금 꼬물꼬물 살아난다.
요즘의 속도야수 십 mbps광랜이니조족지혈이 따로 없지만 그때는다운로드에
1 시간씩 잡혔다가 56,000속도에선 정말 환상이라고 느낄 정도였으니...
경북대학교 동아리 팀 `하늘소`가 만든 `이야기 3.1` 이 후에 나온 접속프로그램이다.
아쉬움에 오늘도 `dadaiz`로 하이텔에 접속해 본다.파란 이 공간에서 만난 지기들은 요즘 인터넷 시대의 지기들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의 향기가 폴폴~ 나는정겨움이 있었고 따뜻함이 있었다.
그때의 지우들과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고 있으니...
(마치 국민학교 동창들 같다.)
참...
소모임의 운영진으로 선출되어 대문 만드느라 거의 밤 샌 일도 떠오른다.
요즘은 태그지만 그 땐 텍스트로 , 안시로 대문을 만들었다.
안시코드...그래 골치 아픈 안시코드... 노트에 좌악~ 정리 해 놓은 거 서랍 어딘가에
아직도 있다.
이 것 말고도 몇 개의 선물이 더 있었던 같은데...하이텔 플라자란에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네티즌으로선 처음 뉴스 인 플라자(칼럼)란에
내 글이 채택 되는 기쁨도 얻었다.
첫 글이 올라가고 나서 그 후 몇 개의 글이 더 채택 되어받은 선물들은 어디로 갔는지
우수이용자라고 보내 준선물 `컵 받침` 이 아직 남았다.
<언론의 자유를 믿습니다.> 마흔 중반의 여편네 `초록다다`
이렇게 글 말미에는 남기곤 했었다. 시사성이 있던 글이라 언론자유... 운운 했었지.
`우좌좌좌좌악~ 우좌자자악~ 삐익~`
그 요란한 접속소리에 한 밤이면 다른 식구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접속을 하기도 했던 기억도 이젠 추억으로 남고,
하이텔 명령어 GO..T..P..B.. 접속하면 눌러대던 PF... 대화방에서 날리던 SAY ~
`/` 슬래쉬는 곧잘 빠뜨려나르지도 못하고가라앉던 `SAY`들... 그때도 그리움으로 남고..
십 수 년도 훨씬 지난 일이 건만얹그제 같은 느낌이다.
그리운 이름.. 그리운 아이디...
세월이 흐르고 살아 온 만큼의 두께에 그리움도 켜켜이 꽂혀간다.
그리움의 시간들을 껴안으며 내 열정의때와 함께 했던 하이텔에게 긴 안녕을 고한다.
" 잘가라~ 하이텔이여~~!!! 또 하나의 청춘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