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을 찾아서
녹우당(綠雨堂).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찾았다.
고산 윤선도 하면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건 `오우가(五友歌)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다.
모자란 머리의 한계인 것이다.
오우가첫 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 버디 몃치나
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의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
박긔 또 더
야 머엇
리.”
-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석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
수(水), 석(石), 송(松), 죽(竹), 달(月).
이렇듯 자연을 벗하며 살았으니 유배의삶도 고난을 넘어
오히려 여유로움으로 살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에 잡히기도 했다.
녹우당초입에서 만나는 오백 년을 산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녹우당... 고산 선생의 고택이다.
어초은의 제실(祭室)인 추원당(追遠堂)으로 가는 길이다.
고산 사당으로 가는 담장길이 정겹다.
뒷 쪽 왼편에 고산의 증조부 어초은사당이 보이고 앞의 건물이다산 선생의 사당이다.
고산 선생 사당의 담장과 문이여행객의 눈길을 묶었다.
고산사당의 담장이다.
정작 내가 이곳에서 반한 건 담장이었다.
천연기념물 제 241 호로 지정 된 비자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다.
덕음산 자락의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푸른비가 내리는 것` 같다하여
불려지게 되었다는 녹우당(綠雨堂).
녹우당을 찾았을 때,
그 때나는 인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병자호란 끝에 청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의 빈 `강 빈(姜 嬪)`에 관한 책을 읽고있었다.
불모로 잡혀갔다 다시 내 나라로 돌아와서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 당한 아들 소현세자
그리고 결국 시아버지에게 사사 된며느리 강 빈.
내가 가진 性이 단일본을 가진 姜이고 보니 소현세자와 강 빈에 대해 알고 싶기도 했고,
케케묵은옛날도 아닌데 집안의 혼사에상대집안의 性에 대해 민감하여
O性과 O性과는 혼사가 아니된다고 하는 얘기를 자라면서 듣기도 한 터였다.
그래서 심지어 청첩장에배우자의 성을 다르게 하여 돌리기도 하였다 했다.
O,O 性 과는 어떤 연관으로 하여 그러하는가... 하는 궁금증도 풀고 싶었기에.
『민회빈 강씨, 보통 소현태자의 빈으로 알려져 있다.
민회빈 강씨는부군인 소현태자가 의문사를 당한 것처럼 그 자신도 끝내 사사 당하는
비참한 말로의 주인공이다.더구나 슬하에 3남을 두었지만 두아들이 유배지에서 요절하니
그야말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라 할 것이다.
민회빈 강씨는 1637년 조선이 청나라에 패전하면서 군신지국이 될때
부군인 소현태자를 따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게 된다.
이때부터 민회빈 강씨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부군인 소현태자가 주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정치,외교문제를 관장하고 있을때
민회빈 강씨는 안살림을 건사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민회빈 강씨는 경제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청나라 지배층을
상대로 조선의 면포,표범가죽,종이.약재,생강 등의 무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청나라 조정의 권유로 농사를 짓게되는데 민회빈 강씨는 주로
한인(漢人) 노예와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관리하게 된다 .
이렇게 무역과 농사를 통하여 민회빈 강씨는 조금씩 부를 축적하게 되는데
민회빈 강씨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인질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또한 포로로 잡혀온 많은 조선인들을 속환시켜 주기도 한다
이렇게 민회빈 강씨는 인질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대처하여 무역과 농사를 통한 새로운 경제모범을 보이게 된다.더하여 소현태자는 이미 천주교와 서양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주의자로 변화되었기에 훗날 조선의 역사는 새롭게 바뀔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민회빈 강씨나 소현태자는 모두가 비참한 말로를 당하게 된다.소현태자는 1645년 환국한지 불과 두달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듬해인 1646년 역시 민회빈 강씨마저 시아버지인 인조의 의심에
말미암아 끝내 사사 당하고야 만다. 참으로 처참한 부부의 운명이 아닐수 없다.
민회빈 강씨의 무고함은 효종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효종 때, 김홍욱은 민회빈 강씨의 무고를 주장하다가 장살되기도 하였다.
결국 민회빈 강씨는 1718년 숙종 45년에 와서야 비로소 신원 된다.
사망한지 72년만의 일이다.』- 네이버에서 옮겨 적다.
장자인 아들을 독살한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을 두고도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그가 `효종`이다.
그 효종(봉림대군)을 가르쳤던 스승이 오늘 내가 찾아 온
녹우당의 주인 고산 윤선도이니
어찌 이런저런 상념에 잡히지 않았으리....
녹우당,
남도여행 중땅끝마을 다음으로 찾았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