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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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길 2009. 3. 31. 18:23



<가까운 문화, 멀어진 미학-이지훈의 살림의 예술찾기>

이지훈 지음/ 컬러/ 각양장/ 신국판 변형/ 232pages/ 물레, 2007

노래부르기, 춤추기, 집짓기, 그림그리기,놀이에 관한 이야기.

동서양 비교문화(예술/철학/미학) 에세이!

지난 2월 처음 선생을 만났다. 부산이 활동 근거지이긴 하지만, 민예총 강의나 철학아카데미 강의가 있을 때면

더러 서울을 방문하곤 했던 터라 운이 좋았다. 민예총 겨울강좌가 끝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인사동의 찻집 <지대방>에서 약속을 잡고만나 글을 청했다. <<국제신문>>에 연재됐던 글을 단행본으로 내겠다고.

이지훈 선생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데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예술과 연금술-바슐라르에 관한 깊고 느린 몽상>(창비, 2004)의 독서체험, 다른 하나는 시인 손택수의 추천.

나만 그 책을 좋게 본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확신이 주효했다. 하긴 이 책은 그에게 제6회 가담학술상을

안겨주기도 했으니, 그 책으로부터 감화받은 이는 나만이 아니었던 게 자명하다.

이번에 물레에서 펴낸 그의 책은 이전의 책보다 한결 쉽고 간결하다. 대중적인 예술에세이.

음악, 춤, 건축, 시각예술, 그리고 놀이와 여흥의 문화에 관한 5개의 마당에서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해가면서

예술의 본질과 아름다움의 가치가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그가 생각을 나누고있는

김지하(미학), 임석재(건축), 채희완(한국 고전무용), 김태원(발레), 이경률(사진), 우실하, 정형진(고대 상상력) 같은

인문학자들의 글 빛깔도 뛰어나다. 이지훈은 이들의 영향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잘 배웠고, 나눌 수 있어

고맙다고 당당히 말한다. 좀더 깊이, 그러나 좀더 신명나고 살맛나게, 즐겁게, 삶과 예술을 만나자는 요청을 하고 있다.

계몽이 필요하지만, 강요된 화해여선 안되는 일 아닌가. 이지훈의 부드러움 속엔 이런 강한 철학이 담겨 있다.

간략히 내용을 소개해보면,

음악의 기원, 음악의 주제와 선율, 대중음악의 미학 등을 다룬 1장(chapter)부터

여성의 춤이 지닌 대지 여신의 이미지,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사라진 남성 춤의 부활을 다룬 2장,

건축의 본질을 묻는 건축의 우주, 우주의 건축은 자못 웅장하고, 문의 미학을 동서양의 문들과 비교하고

같은 동아시아권 일본과 한국 간 창호문의 차이를 푸는 3장까지철학과 미학으로 단련된깊은 심미안이 돋보인다.

그리고 역시 압권은 시각예술을 다른 4장이다. 판화와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예술 일반의 본질을 성찰하고

샤갈과 박생광에선 지명도높은 마르크 샤갈과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박생광을 비교해

이 두 화가가 지닌공통점("공기의 꿈"을 꾸는 상승 이미지)과 차이점을 일별해내고 있다.

마지막 5장은그가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가슴에 품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뛰어난 산문들로 꾸려진다.

'꼬깔모자의 꿈'이란 산문은 동서양 모자문화의 비교다. 서양의 프리지아 모자에서 가야의 금제관모까지 종횡무진이다.

이어지는 산문들에서, 우리의 대표적인 놀이문화인 씨름, 그리고 신라에서 출토된유물곡옥에서 한국문화의 뿌리를 캐고

그 특이성을 이야기하는데,사유의 대상을 향해 뻗어나가는고고학적 정신은상상력이란 것이

무지막지하고 터무니 없는 망상에 기댄 행위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 지성에 기댄 것인지를 보여준다.

좀 난해하게 소개한 듯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면 맘이 후련해질 거다. 그림과 사진이 풍부하다.

보는 즐거움, 생각하는 맛, 짧지만 깊고 오래가는 여운을 선사해주리라 확신한다.

그나저나 책 출간이 너무 더뎠다.이지훈 선생께 송구한 마음이다.

** 조만간 잘 정리된 보도자료를 다시 올려놓아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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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은 참 부드러운 사람이다. 글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서

매우 단단한 뼈가 느껴진다. 아는 것을과장하지 않으려는 소박함은굵은 뼈를 지닌 자가아니면 취할 수 없는 자세다.

사실 국내엔 연금술을 소개한 책자도 적을 뿐더러예술과 연관지어 깊이 있게 사유한 책은 더더욱 귀하다.

그런 상황에서 <예술과 연금술>은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는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다고녜의 제자다. 그리고 다고녜는 바슐라르의 제자다. 이런 식으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과 연금술>이 씌어진 배경이 쉽게 다가온다. 문학를 하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바슐라르에 빠진다. 나 역시 그랬고. 더욱이 집안형편이 녹록치 않아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최고 학부의 교수가 된

바슐라르의 생애는 글만큼 감동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다. 이지훈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바슐라르의 전기를 펴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고 말이다. (그 이유야 뻔하지 뭐. 돈이 안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 탓.)

"바슐라르의 전기를 쓰실 생각은 없으세요?"

물, 불, 공기, 흙(대지)에서 길어올린 물질적 상상력으로 문학과 자연과 몽상의 아름다움을 성찰한 철학자, 바슐라르.

그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는 생을 살았다. 돈이 없어 우체국의 전신기사로 일하기도 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엔 아내를 여의고서,딸 쉬잔 바슐라르만을 기르며 평생 홀로 살았다.

이지훈 선생에 따르면, 그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적에 쉬잔 바슐라르가 자주 다고녜의 연구실에놀러오곤 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독신이었는데, 이유인즉 아버지 바슐라르만한 남자를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어쨌거나 국내에서 과학과 철학과미학과 문학이 순연하게 혼합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흔치 않은 자질을 지닌 사람으로 이지훈을 손꼽고 싶다.여전히 소장학자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뛰어난 에세이스트로서그가 날개를 달고 더 많은 활동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성자 : 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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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공부하고 있는 철학과 미학을 가르치는선생님에 관한 기사라 가져다 놓았다.

지금 난선생님의저서 읽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