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들기
어떤 사람은 평생 병원 문턱도 모르고 살기도 한다는데 시원찮은 난 주변에서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불려지고 있으니 병원 문턱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병은 자랑하라.`던가. 이미 두어 번 가벼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오늘은 주절주절 병과 맺은 인연을 풀어 놓고 싶다.
원래가 워낙 약하게 태어나긴 했던가 보았다. 작고하신 고모 님의 말씀에 따르면
"아~를 안아 볼라캐도 우째 안기가 쉬버야제... 안으몬 온 몸이 출출 흐를라해서..."
(아기를 안아 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어...안으면 아기가 흐물거려서....)
기억 속의 첫 병이 `결핵성임파선염` 이다.옛 어른들은 `연주나력`이라 했고 콩알만한 멍울이
목을 다 돌면 죽는다고 했다. `결핵성임파선염`을 앓게 된 건 소위 `불주사-BCG(결핵백신)`덕분(?)
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지금도 떨칠 수가 없다..
`투베르쿨린반응검사`가 음성으로 나왔고 불주사(BCG)를 맞았지만 다른 아이들 처럼 붉어지거나 곪거나 하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 들어버렸다. 그래서 다시..또 다시... 몇 번을 주사했지만 여전히 사그라 들고 말았다.
지금도 내 어깨엔 `불주사`의 흔적은 눈씻고 봐도없다.
마지막의 불주사를 맞고 난 후 얼마를 지났을까.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고결국 원인을 알았을 땐
`결핵성임파선염`이었다. 어린나이에 한 줌의 파스와 아이나를 먹고 스트렙토 마이신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사춘기... 그 분홍빛 앳된 시간도`늑막염`과 씨름하며고인이 되신 `장기려 박사님`의 환자가 되어
입원과 퇴원을반복했다. 늑막염은 재발에 재발을 거듭해 십 여 년 동안 댓번을 앓았다.
오죽했으면 하고 싶은 쪽의 공부를 접고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간호공부를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하게 되었을까...
"니 몸은 니가 간수해야 안 되겠나." 어머니의 강력한 주장이셨다.
그 간호공부도실습 때 그만 접어야 했다. 다시 몸의 이상으로병상생활이 시작 되었기에...
꼭 자격을 갖춰 직업을 가지려 했던 공부가 아니고 보니 어머니도 나도 복학에 대해 별의미를 두지 않았다.
청년의 때.
제일 건강한 때였다. 부실한 몸 탓에귀하고 좋다는 약은입에 달고 살아서였을까...
소위 혐오식품들이 `약`으로 둔갑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먹기만 했으니...
여느 청춘들처럼 사랑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 당시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
홀로 되신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니는 결혼하몬오래 몬살고죽는다. 결혼 하지 말고 내 하고 오래 같이살자..."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난 마치 투사라도 된 듯 했고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대로 어머니는 찬성은 아니셨지만 결혼에 침묵하셨다.
결혼 후 몇 년.
둘째를 출산 후갑상선기능이상으로 또 다시 병원과 가까워졌고그러는 동안 다행히 양성이었지만
폐종양으로 한쪽 폐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그 후로 이어진 두 번의 수술... (모두 세 번의 수술...더 기록경신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 갑상선기능저하 그리고 알레르기&아나팔락시스.
분명 내 면역체계의 이상이다.
갑상선 기능저하는 `신지로이드`로 보충하면 되지만 알레르기와두려운 아나팔락시스...
아나팔락시스가먹는 것에도 반응을 보이니 일상이여간 힘든 게 아니다.
군침도는 먹이 앞에서 늘 주저해야 하는 고통이 참 어려웠는데 이젠 확실히 `그림의 떡`으로보기도 한다.
먹이를 두고 고통 속에서연마 된`도`다.
먹거리 중에서도 야채나 과일 거부반응이 너무 심하고 보니균형있는 영양섭취가 어려운 과제다.
비타민 섭취가 자연에선 어려우니 지금은 약물로 대신하고 있는데 그 일반 비타민으로선 부족한 모양이다.
어제 진료시 고단위 약제를 써야 하는데 그것도 내 몸이 받아 들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검사를 위해 거짓말 조금 보태 수혈수준(?)의 혈액을 뽑아냈다.(6개의 앰플)
그리고 모발 미네랄 검사도 의뢰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결과가 오는 걸 보고 부족한 영양분만 고단위로 투약 될 거라 한다.
이 달 말쯤이면 영국의 한 제약회사에 주문하여만들어진 내 백신이도착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씩 주사가 시작 되고...몇 개월 후부터는 한달에 한 번...자그마치 삼년을
그렇게 백신을 맞아야 한다. 면역요법의 효과에 기대지수는 50%다. 그 50%의 성공도 내게는
큰 효과다. `그림의 떡`에서 `혀 끝의 맛`으로느껴지는 행복을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삼년 후엔 희귀약품센터를 통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비상시 자가주사약 따윈 가방에서 들어내고 싶다.
현재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투약을 받는 과가 여섯 과.
`움직이는 종합병원`의 진료과가 이 후로 정말 더 이상 늘어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사람만들기.
어머니는 "니 한테 든 돈을 쌓았으면 니보다 작겠나...." 하신다.
돈으로 만든 사람... 앞으로도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
`사람만들기`프로젝트(?)는죽는 날까지 이어질 게다. 아니, 죽음의 순간이 완성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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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 코니 탤벗 |